
김성철 / 백석대학교 대학원 NPO경영학과 교수, 한국평화사회복지연구소 대표
사회복지의 발전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복지예산의 증가인가, 서비스 제공기관의 확대인가, 아니면 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증가인가. 이러한 지표는 복지제도의 성장과 국가의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복지의 양적 확대가 반드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는 복지의 규모를 넘어 복지가 사회에 어떤 역량과 가치를 남기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사회복지실패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회복지의 실패는 단순히 정책이 잘못되거나 사업이 중단되는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당한 재정과 인력이 투입되었음에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지원이 종료된 이후 다시 위기가 발생하며, 복지서비스의 확대가 개인과 공동체의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 역시 중요한 실패의 유형이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본 예방복지와 자산기반 지역사회개발(Asset-Based Community Development, ABCD)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예방복지가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전략이라면, 자산기반 지역사회개발은 주민과 지역사회가 이미 보유한 자원을 활용하여 문제해결 역량을 높이는 접근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를 발전시켜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복지정책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미래 복지국가의 첫 번째 과제는 복지지출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적 역량을 형성하는 투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교육과 건강, 돌봄과 주거, 사회참여에 대한 적절한 지원은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복지지출이 자동으로 사회적 투자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원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될 때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단기적인 사업성과에서 장기적인 삶의 변화로 평가체계를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의 복지사업은 사업기간 내 목표 달성과 예산집행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복지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지, 사회적 관계를 회복했는지,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충분히 확인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업 종료 이후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후성과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이용자 수와 프로그램 횟수뿐 아니라 생활 안정성, 사회참여, 자기결정권, 관계망의 변화 등을 사업 목적에 맞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복지의 성과를 숫자로만 환원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숫자 뒤에 있는 인간의 삶을 더욱 책임 있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세 번째 과제는 지역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는 주민의 경험과 전문성, 자원봉사조직, 기업과 종교기관, 사회복지시설과 다양한 시민조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이 분절되어 운영된다면 지역의 문제해결 능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자산기반 지역사회개발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의 자원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가 보유한 강점을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주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제안하고, 해결 과정에 참여하며, 사업 종료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직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자본을 축적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네 번째 과제는 NPO를 사회적 역량을 창출하는 전문적인 경영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미래의 NPO는 정부의 복지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의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필요한 자원을 개발하며, 주민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조직하고, 성과를 검증하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NPO경영에는 전략기획, 인적자원개발, 재원 다각화, 조직성과평가, 윤리적 책임경영이 통합되어야 한다. 특히 조직의 존속과 사업의 확대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NPO의 존재 이유는 조직의 규모가 아니라 그 조직이 지역사회에 만들어 내는 공익적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과제는 실패를 사회적 학습과 제도개선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복지사업이 기대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그 원인을 단순히 담당자의 역량이나 이용자의 참여 부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사업설계가 현실에 적합했는지, 지원기간은 충분했는지,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었는지, 사업 종료 이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했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기관은 주요 사업에 대한 실패원인 분석과 개선계획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실패 사례를 익명화하여 공유하고, 검증된 개선방안을 다음 사업의 설계에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실패를 기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정책과 조직운영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실패학의 가치가 실현된다.
이러한 전환에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투자는 단기간에 모든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는 공적 안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지역사회 역량 강화와 예방적 개입에 대한 중장기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성과 수요를 반영한 정책을 설계하고, NPO는 전문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실행과 평가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의 자립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복지책임이 약화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빈곤과 장애, 질병과 돌봄의 어려움은 개인의 노력이나 주민의 자발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래 복지의 방향은 국가의 책임을 공동체에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장과 공동체의 역량을 함께 강화하는 데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실패학』이 제시하는 미래복지의 핵심은 실패가 발생한 이후 책임을 묻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패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예방하며, 사람과 지역사회가 다음 위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실패를 줄이는 복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패를 통해 사회적 역량을 축적하는 복지로 발전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복지국가의 비전을 세워야 한다. 국가는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설계하며, NPO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시민은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복지국가다.
그러한 사회에서 복지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키우고, 지역사회의 역량을 축적하며, 다음 세대의 삶을 준비하는 사회적 기반이 된다.
복지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예산을 사용했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예산과 제도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안정시키고, 공동체에 어떤 지속가능한 변화를 남겼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좋은 복지는 오늘의 어려움을 해결한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복지는 오늘의 지원이 내일의 역량이 되도록 만든다. 실패를 반복하는 복지에서 실패를 통해 배우는 복지로, 단기적 지원에서 장기적 사회투자로, 제도의 확대에서 인간과 공동체의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사회복지실패학』이 지향하는 미래 복지국가의 새로운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