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 한 젊은 사회복지사가 월드비전 회장의 곁을 지키며 5년 동안 전국의 교회와 학교, 기업을 누볐다. 수백 차례 이어진 후원설명회마다 회장은 같은 말을 외쳤다. "이제는 우리가 받은 사랑의 빚을 돌려줄 때다."
30여 년이 흘렀다. 그 회장의 이름이 새겨진 상을 받기 위해, 그때의 사회복지사가 단상에 올랐다.
김창준 효창종합사회복지관장(62)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홀에서 열린 (사)미래복지경영(이사장 최성균)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제12회 송엽(松葉) 이윤구 사회복지지도자상'을 받았다. 이 상은 월드비전 회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지낸 고(故) 이윤구 박사(1929~2013)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귀감이 되는 사회복지 리더에게 수여된다.
김 관장에게 이 상이 여느 공로 표창과 다른 이유는 그가 이 박사를 책이나 기록이 아닌, 곁에서 직접 모시며 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의 빵' 저금통에 모인 작은 동전들이 대한민국을 '도움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바꿔 가던 현장을 스승과 함께 걸었다.
스승에게서 배운 나눔이 평생의 소명으로 굳어진 곳은 뜻밖에도 전쟁터였다.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때, 그는 참상을 국내에 알리고 도움을 모으기 위해 SBS 방송팀, 배우 김혜자 씨와 함께 포화 속으로 들어갔다. 김 관장은 "폐허 속에서 떨고 있던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며 "그날의 울림이 30년 소명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날의 다짐은 한국 방송 모금의 새 장을 여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월드비전에서 그가 기획한 「SBS 기아체험 24시간」은 국내 최초로 방송 모금에 ARS를 도입해, 방송 4시간 만에 24억 원을 모았다. 프로그램은 한국방송대상과 SBS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후 그의 발걸음은 기업과 정부로 넓어졌다. "나눔의 국가대표가 되려면 마케팅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푸르덴셜에 들어가 MDRT 8회, COT 1회를 달성하며 자원개발의 역량을 다졌다. 보건복지부 장관정책보좌관 시절에는 「MBC 대한민국은 한가족입니다」를 기획해 유한그룹의 5억 원 후원을 이끌었고,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는 「작은결혼(스몰웨딩)」 캠페인을 주도해 획일화·상업화되던 결혼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았다.
NGO와 기업, 정부를 오간 이력이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그는 담담하다. "자리를 옮겨 다닌 게 아닙니다. 나눔과 돌봄이라는 하나의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그 하나의 길은 지금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ESG’로 이어지고 있다. 김 관장은 효창종합사회복지관을 전국 최초의 ‘ESG복지관'으로 브랜딩하고,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생활 속 ESG를 실천하는 복지 모델을 만들어 왔다. 이 모델은 워크숍과 강의를 통해 전국 100여 개 사회복지시설과 공공기관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는 “ESG를 기업만의 숙제로 두면 시민은 수동적인 구경꾼이 된다”며 "시민이 실천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여 년 전 스승이 외치던 '사랑의 빚'은 이제 그의 언어로 새로운 꿈이 됐다. 김 관장은 "이윤구 회장님이 꿈꾸셨던 '나눔 문화 일등국'을 이루고, K-ESG를 ‘NEXT 한류'로 키워 지구촌에 전파하는 데 남은 삶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의 다짐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관장은 수상 소감에서 "앞으로 훌륭한 사회복지사들이 이 상에 도전하면 좋겠다"며 받은 상금을 기부하기로 약정해 화제가 됐다. 스승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이번에는 후배 사회복지사들에게 돌려준 셈이다.
한편 ‘20년, 내일을 잇다'를 슬로건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복지계 인사와 내외 귀빈 2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분단을 넘어 통합으로: 평화·통일·복지의 미래'를 주제로 한 기념포럼과 보건복지부장관상 시상도 함께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