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록- 고려 대학생들이 보는 미투 운동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서지현 검사의 폭로 덕분에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미투 운동에 참여한 모든 피해자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렇지만 미투 운동이 왜 2018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미투운동의 효과와 우려되는 점, 그리고 보완점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활발해야 미투 운동이 일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 사회의 발전을 이끌 것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각각 항목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회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 사회였다. 사회 곳곳에 기득권층은 언제나 남성이 대부분이었고 사회적 인식도 남성 위주로 흘러갔다. 그래서 과거의 사람들은 여성인권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사회적 압력에 의해 본인의 생각을 충분히 피력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은 방관하거나 덮었고 범죄 사실은 점점 묻혔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지금의 미투 운동과 같은 사건이 터지더라도 피해자들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폭로 이후 피해자들은 왕따나 보복, 왜곡된 소문의 확산 등 2차 가해를 당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혹은 폭로를 하더라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체념으로 인해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본인이 피해 받았던 사실을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사회구조는 변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알고 성평등 사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졌다. 그래서 사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갖고 있던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했다. 또한, 미디어의 발달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가진 파급력이향상됐다. 더 빠르고 많은 사람이 접하게 되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모두가 자각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고 피해자들은 전보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였다. 표면적으로 미투 운동이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서지현 검사가 폭로함으로써 갑자기 발생한 운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투 운동은 위와 같은 사회적 기반, 그리고 오랫동안 여성들이 피해를 보았던 역사와 이에 대한 문제인식이 축적된 결과이다.
이러한 미투 운동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의 여론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정부와 의회가 각종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미투 운동을 통해 사회 전체가 각자의 언행에 대해 성찰해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떠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사회 전체의 윤리 의식이 고양된 것도 긍정적이다. 이것이 더 나아가 성평등의 신장으로 이어져 성 관련 부문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교육 등 타 영역으로 확장되는 움직임을 보인다. 영국의 페이미투(#PayMeToo) 운동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미투 운동이 널리 퍼져 성평등이 진정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미투 열풍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이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생각을 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과거에 여성인권에 대해 의식이 매우 낮았다. 그래서 어떤 표현이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질지 무지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지로 인한 가해행위를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해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비판해도 되는가? 예로 들어 과거 몇 십 년 전만 해도 노비나 머슴은 여전히 존재했고 이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사람들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한 반인륜적 행위자’라며 욕하지는 않는다. 아니면 더 극단적으로 올라가서 세종대왕이나 정조를 위와 같이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오히려 이 말을 듣고 피식 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비나 머슴을 과거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더는 없는 문제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노비나 머슴이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왜 무지로 인해 발생했던 성희롱은 이와는 다른가? 가정을 해보자.30년 전에 상사인 A모씨가 부하직원 B씨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했다고 하자. 그러나 당시 사회는 이를 자연스럽다고 여겨 A씨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는 당연히 잊고 있었지만, B씨는 피해자로서 평생 상처를 품고 있었다. A씨는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같이 인식이 성장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잊고 있었던 30년 전 과거의 그 사건을 갑자기 그에게 들이밀면서 성범죄자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고 처벌하는 것을 옳다고 볼 수 있는가?
또 하나 생각할 거리로는 ‘미투 운동이 가해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는가?’이다. 고등학교 교과목 중 ‘낙인이론’이 있다. 일탈자는 과거에 찍힌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2차 일탈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미투 운동의 강력한 힘 중 하나가 대중이다. 그런데 미투로 인해 사회적 연결고리가 모두 끊긴 사람은 나중에 복귀했을 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보장이 충분히 되어있는가? 이러한 고민이 활성화되면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투가 성공하기 위해 보완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당대표자는 미투 운동을 ‘미투 운동이 퍼져 좌파를 끌어냈으면 한다’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렇게 본질을 흐리는 사람도 자제해야 하지만 일반 대중 또한 미투가 왜 일어났는지 다시 생각해 볼 시기이다. 미투 운동은 남녀 대결이나 여혐,남혐 사상도 아니고 정치적 진영의 논리의 산물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권력에 의해 불합리하게 피해를 본 피해자들의 권리를 위한 움직임이다. 이를 잊지 말아야 미투 운동이 끝까지 힘을 발휘해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측면을 해결하는 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일반인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연예계나 정치계에도 심각하지만 일반 회사 내나 교육 현장 등에도 문제가 많다. 그러나 언론이 화제성만을 쫓고 일반인들을 소외시키면 미투 운동이 일시적인 ‘행사’로 끝나게 된다. 언론은 유명인이나 공인 못지않게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불합리한 구조를 폭로하고 해결책을 같이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미투 운동을 통해 성희롱과 같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나 합의를 모색했으면 한다. 많은 남성은 미투 운동으로 인해 익숙했던 환경에서 낯선 환경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나 잠재적 가해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겁을 먹어 지금 인터넷 여론상의 반발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불분명한 기준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단어나 발언, 행동은 성희롱이고 성추행이다’라며 범위를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 간의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많은 남성이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것이 미투 운동에 대한 더 많은 남성의 지지를 불러일으켜 미투 운동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는 데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