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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방지법
  • 박은희 기자
  • 등록 2023-09-18 12: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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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2018년 2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는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도 덴마크에서 실시하는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제정해 국가가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선지급한 후 생부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혼모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만4000명 정도라고 하지만 확인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실제 미혼모 수는 이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2005년부터 미혼모가 아이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성정책연구원이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생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4.7%에 불과하다. 정부가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5년부터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치했지만 별 실효성이 없다.


현재도 판결을 통해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는 법과 제도는 다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의 까다로운 절차는 시간과 돈이 부족한 미혼모에게는 현실적인 부담이 된다. 생부가 자신이 친부임을 부정하는 경우 친자확인소송을 해야 하지만 생부가 유전자 검사를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거나 아예 잠적을 해버린 경우 미혼모들은 긴 소송에 지치게 된다. 이행 명령이나 과태료, 감치 처분까지 한다 해도 돈이 없는 생부에게는 끝까지 양육비를 받지 못한다. 생부의 정확한 소득 파악도 쉽지 않을뿐더러 차명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엔 양육비를 받아낼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만약 우리나라가 덴마크식의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제정해 국가가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생부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생부에게 재산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전체 한부모 가정 중 미혼모 가정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데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는 사안을 고려한다면 미혼모들에 대해서 만큼은 복지 정책의 차원에서 이런 정책을 실시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결혼 전 동거나 사실혼에 대해서도 결혼에 준하는 보호를 하고 미혼모가 출산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도와주는 서구 국가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 서유럽 국가는 혼인 자체를 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미혼모도 많기에 미혼모가 주홍 글씨 낙인을 받지 않는다. 필리핀이나 남미 등의 국가들은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도 기혼 가정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축하한다.


우리나라에서 미혼모는 ‘결혼도 안한 여자가 애를 낳았다’는 비난과 냉랭한 시선을 견뎌 내야 한다. 임신한 여성은 육체적·심리적 변화가 생겨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데 가족들에게 이해 받는 것조차 어려워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미혼모가 갈 수 있는 쉼터도 마땅치 않다. 미혼모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비교적 어린 미혼모의 경우는 애기를 키우며 경제적인 자립을 하기가 매우 어렵기에 생활고로 내몰리기 쉽다. 그 외에도 주위의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거나 출산 후에도 양육을 돕는 이가 없어 경력 단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쉽지 않은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미혼모들은 자립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차가운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국가에서는 비양육자의 위치추적·재산조사·제재조치 절차 등을 거쳐 국가가 직접 양육비를 받아낸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경우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징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혼 가정에 특화된 법안은 없다. 생계가 힘들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경우 기초생계급여를 받거나, 일정 소득 이하인 한부모 가정에 월 13만 원씩 양육비를 지원해 주는 정도이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죄인처럼 위축될 이유는 없다. 결혼 기피와 출산율 감소로 인구 절벽에 대한 우려도 대두되는 현실에서 미혼모가 낳은 자녀가 잘 성장해 사회인으로 제 역할을 한다면 이는 국가 전체에도 이득이 되는 일이다. 흔히 10대 미혼모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정식 통계 자료를 보면 30대 미혼모가 제일 많다. 어린 시절 철없는 불장난이 아닌 성인으로서 미혼모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여성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국가나 사회가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배려하고 지원해 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혼모들에게 내가 낸 세금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해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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