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7-5 국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8-17 15:48:17

기사수정

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7-5 국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라는 책에는 복지 천국 스웨덴의 모습이 담겨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스웨덴이 고용률이 80%에 육박하며 오늘날 복지 국가의 선봉에 서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책 속 인터뷰에서 주한 스웨덴 대사를 지낸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은 ‘평등’ 정신이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과 정치적, 사회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보상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에서는 ‘라떼 파파’(유모차 끄는 남성)를 흔하게 볼 수 있다. 68세 할머니가 정치에 도전하기도 한다. 스웨덴에는 ‘평등 옴부즈맨(DO, Diskriminerings ombudsmannen)’이라는 특별 행정감찰관 제도가 있다. 평등 옴부즈맨은 여성, 남성, 장애인, 아동, 난민 등 모든 종류의 차별 행위를 감시한다.


스웨덴은 성평등, 육아 및 교육, 일자리, 복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동안 소외되고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성들의 힘과 에너지를 어떻게 잘 이끌어 내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국가와 사회는 고민하고 대답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산정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2013년 첫 발표 이래 늘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공직 최종 단계인 고위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5%에 불과하다.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도 2%대이다. 그나마 여성 이사 중 절반 정도는 기업 소유주의 배우자나 딸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득이 높은 직종과 직위에서 배제되는 ‘유리천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차별로 작용하는 유리천장은 기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고위급 임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5% 이상인 기업’과 ‘10% 이하인 기업’으로 나눠 둘을 비교하면, 여성 비중이 높은 기업군이 주가순자산비율(PBR)에선 3%, 자기자본이익률(ROE)에선 18%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 고위 공무원이 증가할 때 공정성·투명성·부패·효율성 네 측면 모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각국 정부는 공공과 민간 두 영역에서 유리천장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350대 기업에 대해서 이사회 여성 비율을 33%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추진 중이다. 노르웨이는 이사회의 여성 할당 비율을 법으로 규정하는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였다. 이사회 ‘40% 성별 쿼터제’가 그것이다. 인도도 이사회에 최소 한 명 이상 여성 참여를 강제하고 있다. 이사회 여성 참여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재차 말하지만 대부분의 성폭력이나 성희롱은 단순한 남녀 간의 성의 문제가 아닌 부당한 권력 관계에서 빚어지며,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에서 기인한다. 지위나 나이, 성별 등으로 차별하는 것에 익숙한 조직문화 속에서 가해자는 자신이 성희롱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친밀함의 표현이라 별 문제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만큼 의식이 없고 둔감하다. 이처럼 뿌리 깊은 권력 관계와 그것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 문제는 태동하고 확산된다.


최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투의 배경은 촛불 혁명으로 등장한 탈권위적인 문재인정부가 인권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문재인 정부하에서 한국 여성들의 현실은 눈에 띄게 많이 나아지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한다는 생각으로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뒤 열흘 만에 여성가족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고용노동부 등 12개 부처가 협의회를 구성해 ‘직장 및 문화 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골자는 권력형 성폭력 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다.


여기에 따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의 법정 최고형이 현행 징역 5년에서 10년으로 형량이 배로 강화된다. 강간·강제추행의 성범죄 공소 시효도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 현재는 과태료 처분에 그치는 사업주의 성희롱이나 성희롱 행위자 미징계에 대한 처벌도 벌금 또는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성폭력 범죄를 일으킨 예술가는 정부 보조금 등 공적 지원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온라인 악성 댓글에 대한 처벌도 포함됐다. 고용부 홈페이지에 익명 신고창구를 개설하고 남녀고용평등 업무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감독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근로감독관 인력이 너무 부족해 기존 업무만으로도 버겁다. 실제 현장에 나가더라도 익명 신고를 근거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문화 예술계 30인 이상 사업장을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한다지만 문화 예술계엔 30인 이상 사업장이 별로 없다.


양형 기준이 상향되면 검찰의 구형도 높아지고 선고도 높아진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불기소가 많은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단순히 처벌 강화만으로는 성범죄를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은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졌다면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증거 확보가 너무 어렵고 가해자가 부인하면 진실 게임 양상으로 가 버린다. ‘업무상 위계·위력’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업무상’이란 문구의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사실적시 명예 훼손죄’에 대해서도 정부는 ‘폐지’ 대신 ‘위법성조각사유 적극 적용’을 제안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310조 위법성조각사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을 세심하게 반영하지 못한 정부의 대책이 성폭력 근절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기존에 있던 정책을 보여주기 식으로 망라하고 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해 남성들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교육이 부족해 보인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실태 조사도 필요하다. 여러 대책들을 추진하는 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여성가족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만큼 각 부처 간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미투 운동은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성폭력 문제를 혁명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가가 할 일은 미투 운동이 성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을 뒤집어엎는 사회 운동으로 확장되어 여성 인권이 보호되고 신장되는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튼튼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국가도, 사회도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동두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의정부닥터뷰치과의원과 업무협약 진행 동두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김종학)은 4월 11일 목요일 의정부닥터뷰치과의원(대표:최용석)과 업무협약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2. 원주시노인종합복지관 전승권 과장, 제18회 사회복지사의 날 보건복지부 장관상 표창 원주시노인종합복지관 전승권 과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진행된 ‘제18회 사회복지사의 날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
  3. 고성살롱, BEAUTY SCOOL 2024 이·미용 전문 자원봉사자 양성 교육』운영 사단법인 고성군자원봉사센터(센터장 : 김정인)에서는 자원봉사활동 영역의 다양화 및 전문화 추세에 대응하여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전문교육을 실시, 다양한 분야의 전문봉사단을 구축하고 있다.
  4. 경상북도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시럽(Senior Love)서포터즈 4기 발대식 개최 경상북도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관장 김종운)은 지난 4월 8일 경상북도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교육장에서‘시럽(Senior Love)서포터즈’4기 발대식을 개최하였다.
  5. “버려지는 커피찌꺼기를 재활용” 새로운 가치 탄생 매년 15만 톤 이상의 버려지는 커피찌꺼기와 캔따개를 활용하여, 무안시니어클럽은 친환경 업사이클링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켜서, 노인일자리 창출, 오감만족 프로그램을 진행으로 행복한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