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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 7-3 미투와 페미니즘)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7-27 09: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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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7-3 미투와 페미니즘


그동안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깊이를 잴 수 없는 심연처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일상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이것은 특정한 국가에 한정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아이슬란드 등 세계적으로 거대한 미투 물결이 일고 있다. 세계적으로 양성평등에 가장 근접한 나라로 손꼽히는 스웨덴에서도 미투 운동은 1919년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 가장 큰 여성 운동이자 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일시적 유행이나 가십거리로 소모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을 극복하는 역사적 전환의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꽤나 높고 두텁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적당히 은폐될 수 있었던 일들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재규정되는 과정은 분명 민주주의의 진전이며 역사의 진보이다.


미투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미투 열풍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종종 남성에 대항하는 드센 여자들로 여겨져 왔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남녀평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조심스럽게 붙이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 따르면 성별 분업이나 이로 인한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이 거의 없었다. 농업 시대나 자본주의 시대에 비하면 훨씬 평등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생물학적 차이를 남녀 불평등의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것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키워지는 것으로 본다.


뉴스를 한번 보자.

여성 기상 캐스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S라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나온다. 나이 지긋한 남성 앵커 옆에 젊은 여성 앵커는 장식품처럼 앉아있다. 이 경우 남성 앵커의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여성 앵커들은 미모로도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야 한다. 메인을 담당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 앵커 옆에 젊은 남성 앵커가 앉아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처럼 방송 언론의 성역할부터 불공평하다. 그리고 우리는 별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고 길들여져 왔다.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오드리 아줄래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언론은 여성 선수의 외모와 가족 관계에 주목한다”고 지적하며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 스포츠인의 소식을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여성의 외모는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나라 여성 청소년들의 신체 이미지 왜곡 인지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마른 체형의 여학생 10명 중 약 3.5명은 항상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TV 화면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마른 여성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현실에서도 날씬하고 예쁜 여성에 대한 유무언의 강박을 어린 여학생들도 느끼고 있다.


여성을 대상이나 물건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토양이 된다. 여성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가 범람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하나의 주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긴 어렵다. 여학생들은 교육 과정에서부터 ‘성별 이분법’에 갇힌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틀을 벗어나 그 너머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러면 여성이 스스로를 주체적 인간으로 인식하고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의 4,50대 남성들은 대화 중에 성적인 발언을 슬쩍슬쩍 넣는 것이 양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또 다른 절반의 인격체로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욕망의 도구로 바라본다. 이런 인식에서 부지불식간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자행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불쾌감과 상처를 주는지조차 잘 모른다.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남성은 자연스럽게 성차별주의자가 된다. 여성들의 성평등 인식이 높아지는 반면 남성의 인식 변화는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편견과 차별이 아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 남편들의 하루 가사 노동 시간은 45분으로 OECD국가 중 최하위이다. 맞벌이 아내의 가사 노동 시간이 4시간 19분인 것과 대비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결혼은 꼭 해야 한다’와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비율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2015년 강력범죄 피해자의 88.9%는 여성이었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사람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이며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다.


양성 평등 사회는 성폭력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성, 인권 감수성 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들이 보다 성숙되어야 한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장난이나 무시가 상대방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시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페미니즘을 포함한 성 평등 교육을 해야 한다. 성별 고정 관념을 재생산하는 교육 과정과 교육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의 성적인 통념과 성별 이분법적인 위계 사고 속에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페미니즘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문화는 어느 진영에나 다 있다. 페미니즘은 모든 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한 인권 운동이며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치관이자 세계관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며 모두의 존엄을 실현하는 교육이다.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요와 강박관념 속에서 억압받는 남자들에게도 성평등 사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양성평등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짐만 들면 된다. “남자가 말이야! 그것도 못해?”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여성들은 권리를 되찾고 남성은 그동안 과도하게 짊어지고 있었던 의무감과 부담감을 내려놓는, 그래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이다. 배워야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배워야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최근 21만 3219명이 참여한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대해 정부는 통합적 인권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 올해 안에 인권 교육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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