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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 5-5 제대로 알고 대응하자)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4-10 09: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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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지만, 이제 두려워하는 것을 멈출 때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5-5 제대로 알고 대응하자


‘성폭력(Sexual Violence)’은 1994년에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명시적으로 정의된 용어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이는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지는, 또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가해 행위’를 일컫는 가장 큰 개념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구분하지 못한다. 원치 않는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리 학습이 필요하다.


‘성희롱(sexual harrassment)’이란 ‘남녀고용평등법’, ‘남녀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용어로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다.


성희롱의 유형으로는 언어적, 신체적, 시각적 성희롱이 있다. 음담패설, 음란한 농담, 신체,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 음란 전화,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등이 언어적 성희롱에 속한다. 강제적 신체 접촉(껴안기, 입맞춤, 만지기 등), 회식 시 옆자리 착석 강요, 술 따르기 종용 등 신체적인 접촉 행위는 신체적 성희롱에 속한다. ‘음란한 눈빛’은 입법 과정에서 빠졌다. 외설적인 내용의 사진. 그림을 보여주는 행위나 특정 부위를 보는 행위, 성과 관련된 자신의 신체 부위를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만지는 행위 등은 시각적 성희롱에 속한다. 상대방의 의도치 않은 말이나 행동도 내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성희롱에 해당된다. 성희롱은 다른 성범죄들에 비해서 처벌에 있어서도 기준이 현행법상 다소 모호하다.


한편 ‘성추행(sexual assault)’은 성폭력의 하나로 강제 추행을 뜻한다. 성추행이 성희롱과 다른 것은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것이다. 즉 의사에 반한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정도의 신체 접촉이었다면 성추행이 성립할 수 있다. ‘폭행’은 사람에 대한 직접, 간접의 물리적 힘의 행사를 의미한다. ‘협박’은 해악(害惡)을 고지하여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행위 객체 이외의 제3자에 대한 해악의 통고도 포함된다.


폭행, 협박의 정도에 대해서 판례는 상대방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이면 족하다고 본다. ‘추행’은 상대방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음란한 행위로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행위는 침해의 중대성이 있는 육체적 접촉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어긋나는 행위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강제 추행으로 보고 있다.

추행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 내용, 주위의 객관적 상황,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행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성희롱과 달리 성추행 피해를 입은 경우엔 형사 고소가 가능하다. 성추행 고소장에는 규정된 형식은 없지만 성추행 고소장을 작성할 때에는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피해사실을 정확하게 기재하도록 한다. 그런데 형법에는 단순 추행 처벌 조항이 없어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강제 추행만 처벌한다. 법원은 그간 ‘기습 추행도 강제 추행에 포함 된다’는 해석으로 단순 추행과 강제 추행 사이의 틈새를 메워 왔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부주의를 틈타 ‘갑자기’ 추행하는 것도 강제 추행으로 보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피해 여성이 싫어하는데도 직장 상사가 등 뒤에서 어깨를 주무른 행위는 강제 추행죄에 해당한다. 또한 저항할 경우 신분상의 불이익을 줄 것처럼 협박해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데도 이른바 ‘러브샷’의 방법으로 술을 마시게 한 행위도 강제 추행죄로 인정된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을 통해 단순 추행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 행위의 정도와 유형에 따라 합리적 형량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법 298조 강제 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벌금이나 징역과 같은 형벌 외에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재범 예방에 필요한 수강 명령,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의 이수 명령, 보호 관찰이나 사회봉사 처분 등도 병과될 수 있다. 강제 추행죄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가해자는 신상 정보 등록 대상자가 되어 주소지 관할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상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처벌은 어떠할까? 현실적으로는 가해자의 대응에 따라 다양한 결과(무혐의, 기소유예, 벌금, 집행유예, 징역형 등)가 나올 수 있다. 초범이며 경미한 수준의 성추행 피의자들은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반성문, 탄원서 등을 제출하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는 등의 대응으로 기소유예나 가벼운 벌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한편 성추행 현장이 버스나 지하철처럼 사람 많은 곳이라면 성폭력처벌특례법상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 


‘성폭행(rape)’은 강간과 강간 미수를 포함하는데 폭행과 협박을 가해 갖는 성교 행위를 가리킨다. 성폭행범은 형법 297조에 의거해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는다.


쉽게 풀어쓰자면 직장 내에서 성을 매개로 벌어지는 언어적, 신체적, 시각적 부당 행위는 모두 성희롱이다. 성희롱에서 더 나아가 강제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면 성추행이 되고, 성추행을 넘어서 강제로 성행위를 하면 성폭행이 된다. 그런데 성범죄는 특히 은밀하게, 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죄 증명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고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에는, 설령 가해자에게 성욕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이 없었더라도 강제 추행죄가 성립한다. 따라서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비칠지, 또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는 아닌지 늘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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