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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3-3 한국 남자들이 살아온 세상)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1-11 17: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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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뻔뻔하고 무지한 수컷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3-3 한국 남자들이 살아온 세상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 은하선은 “남성: 다리와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살덩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 우주로부터 환영받는 존재.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고추 달린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나는 탓에 그 고추의 크기가 자신감과 자존감의 크기가 되어버리는 비운의 존재”라고 표현한다. 한국에서 남자들은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남자다워야지”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난다. ‘남자다움’에는 여성에 대한 지배가 포함되어 있기에 절대 여성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가부장적 군림의 대상이거나 보살펴야 할 부족한 존재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을 굳이 ‘공처가’라 호칭한다. 현모양처에 대응하는 ‘현부양부’라는 말은 없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존중의 개념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불감증에 걸린다. 자아성찰도 약해져서 내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게 된다.


2017년 6월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 10여 명이 여성교사 수업 중 집단 자위행위를 했다. 그러나 보도기사의 논조는 남성 성욕은 ‘본능’이고 혈기왕성한 10대들의 치기쯤으로 치부하면서 관대하게 이해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자화상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술 마시는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사 양 옆에 젊은 여직원들을 앉히고 당연하다는 듯이 여직원 허벅지 만지는 게 다반사였다. “비구니든 장모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지”라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자기 얼굴은 생각지도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자 외모 평가하느라 침이 마른다. “화장 좀 하고 다녀라”거나 “이쁜 몸매 감추지 말고 타이트한 옷을 입고 다니라”는 주제넘은 참견은 애교로 받아들일 정도다.


특히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를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무의식적인 착각이다. 권력과 혼재된 그런 착각은 반드시 문제 상황을 만들게 된다.


일본 정계에서는 “배꼽 아래는 논하지 마라”는 말이 암묵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배꼽 아래는 논하지 마라”…이 무시무시한 관행 속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성범죄에 노출이 되었을지 가슴이 섬뜩해진다.


우리 정치권도 상당히 오랜 기간 성추문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여 왔다. 중앙정보부에 채홍사 전담 직원까지 두고 궁정동 안가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과 밀회를 했던 박정희, 유명 여배우와의 스캔들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그리 크지 않았다.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었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력 파문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평소 인권과 사람다운 세상, 진보를 강조하던 그의 위선적인 행태에 많은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온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었지만 유독 여의도 정치권은 60~70년대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문화에 천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괘념치 말거라.” 안지사가 성폭행 후 카톡 대화방에 남긴 글이다. 사극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화법이다. 그가 원했든 아니든 간에 안희정은 정치권 미투 열풍의 도화선을 당겼다. 비록 그의 대권 도전의 꿈은 끝났지만, 그가 정치권의 문화와 관행을 바꾸는 촉매가 될 수 있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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