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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3. 뻔뻔하고 무지한 수컷들)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0-28 10: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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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뻔뻔하고 무지한 수컷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3-1 남성 ‘성욕’은 본능이니 이해하라고?


사회 운동가 토니 포터의 책 『맨박스』는 소위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어떻게 남성을 제약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맨박스’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 관념의 틀을 의미하는데 평범하고 선한 남성일수록 사회가 원하는 ‘맨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성들은 남자다움을 집단적으로 배워왔다. 터프하고 거친 남성으로 행동할 때 다른 남성들에게 인정받는다. 이것은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적 가해조차 ‘남자다움’ 내지 ‘남성적 본능’이란 말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서는 주인공 알렉스와 친구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강간을 저지른다. 유명한 시사만화가 박모 씨는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 예비 신부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치마 아래로 손을 넣었다고 한다. 이유는 “반가워서.”


수잔 브라운밀러는 『Against Our Will』이라는 책에서 강간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는지 ‘강간 문화’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녀는 “능동적인 남성-수동적인 여성”이라는 구도에 따라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했으며, “남성 권력이 주도하는 강간 문화”는 전쟁 중에 여성을 상대로 자행되는 강간에서 정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쟁은 남성에게 ‘암묵적인 강간 면허를 부여’했으며 1차·2차 세계대전에서 강간은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의 적대 행위가 ‘강간’인 것이다. 수잔은 ‘강간 말하기 대회’를 통해 강간을 ‘드러내 말할 수 있는 범죄’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현실의 사법 시스템은 강간범에 관대하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강간당하는 여성은 있을 수 없다”는 근거 없는 말로 문제의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돌린다. 19세기 오노레 드 발자크가 “움직이는 바늘에 실을 꿸 수는 없다”라고 말했던 것이나 “여성들에겐 고통에 대한 욕정이 있다”고 주장한 프로이트의 말과 궤를 같이한다. 남성들이 움켜쥐고 있는 법 제도와 문화, 미디어에 의해 성폭행의 정의는 매우 협소하게 내려지거나 성폭행 자체가 부인된다. 강간이나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는지, 정확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는지, 격렬히 저항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이전에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성폭행을 당하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를 했는지 의심과 비난의 추궁이 더해진다. 아마도 피해 여성이 강도 피해자라면 똑같은 질문을 하진 않을 것이다. 성 문제에 비교적 관대한 처리 관행과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 사건은 일어나도 쉬쉬하거나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힘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교묘한 강간도 있다. 어떤 강간범은 신체적인 힘을 넘어서는 권력의 우위를 활용한다. 집단 내에서 인기가 있거나 존경받는 남성인 경우, 즉 가해자가 일종의 우상인 경우엔 피해자가 우상의 후광에 함몰되어 자신이 강간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 페미니즘 운동은 강간을 수치스러워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드러내 말할 수 있는 범죄로 만들었다. 이후 여성들은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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