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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2-8 내 몸에 개 같은 짓 다 한 자식들)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0-21 10: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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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2-8 내 몸에 개 같은 짓 다 한 자식들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결국 고 장자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이 23만 명을 넘어서는 등 사건의 중대성과 의미,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한 것이다. 9년 만의 재수사로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될 것 같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성상납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 달라”며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묻혀 있던 이 사건을 다시 공론화하고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미투 운동’의 물결이었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배우 장자연이 세상을 떠나면서 “죽어서라도 복수하겠다”며 남긴 유서, 일명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것이다. ‘장자연 리스트’에는 그녀가 경험한 성폭력과 착취의 기록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언론사 대표, 방송국 PD, 중견 기업의 오너, 고위 공무원 등 유명인사들 30여 명이 성 접대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들 명단을 공개하라는 높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당연히 명단 공개도 없었다.


그녀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폭로하려 했던 성폭력 가해자들의 추잡한 행동은 법의 심판을 교묘히 피해갔다. 당시 경찰은 성 접대 의혹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된 17명 중에서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아무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장자연 소속사의 전 대표와 전 매니저만 폭행이나 협박 혐의로 기소되어 꼬리 자르기란 의혹도 있었다.


다음은 장자연 유서 중 일부분이다.
“개 같은 미친 변태 새끼들을 크게 혼을 내 줬음 좋겠어.... 김 사장 아는 사람들 모두가 악마 악마들이야. 악마들 그것두 완전 미친 악마 그런 거...니가 꿈꾸고 소망하는 일이 잘되게.. 도와주겠단 식으로.. 꾀어서... 내 몸에 개 같은 짓 다 하구.”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 리스트에 적힌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가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 금융거래 조사 결과 억대 수표를 입금한 남성 20여 명의 명단을 경찰이 확보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수사 결과 발표에 고액 수표 입금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성 접대 대가로 의심 가는 대목이 있어 추궁했지만 “김밥 값으로 줬다”는 황당한 변명에 경찰이 어이없어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김밥 값이 아닐 수 없다.


계좌 입금 내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입증하지 못했는지 재수사 과정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장자연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술 접대와 성 접대에 대한 강요와 성폭행 부분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검찰이나 경찰이 내부적으로 수사를 무마한 정황이나 외압이나 봐주기 논란은 없었는지도 명명백백하게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엄중한 재수사로 미궁 속에 빠졌던 실체와 범죄 혐의가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공소 시효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큰 벽으로 다가온다. 사건의 당사자가 자살을 한데다 대부분의 성폭력 관련법들의 공소 시효가 5~7년 등으로 짧은 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소 시효를 감안해 수사나 징계를 의뢰하는 수준에서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2018년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미투 혁명을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철저한 재수사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결과가 투명하게 세상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저 세상에서나마 편하게 눈을 감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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