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2-4 성추행과 트라우마
한국의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 탓에 사실을 밝히고 용기 있게 나서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자신의 상처를 억누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무기력한 감정과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성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건가?” 하며 스스로의 처신에 대해 먼저 자기검열을 하며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오랫동안 혼자서만 간직했던 깊숙한 곳의 상처를 꺼내고 용기 내어 말하는 것으로부터 상처의 치유는 시작된다. 피해 여성들이 무너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까지의 여정은 힘들고 긴 시간이다. 이 길은 여럿이 오래 힘을 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여성 화가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한 그녀는 로마 교황청에 소송을 제기했다. 15년 후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그렸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유린한 스승의 얼굴인 듯하다.
폭력으로 남성을 응징하는 그림으로 자신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한 한 여성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