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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을 연재합니다. (1-7 여성은 아기 공장이 아니다!)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08-25 2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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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오늘 미투 티셔츠를 입는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1-7 여성은 아기 공장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사회 변혁 운동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인 ‘낙태죄’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낙태를 요구한 여성이나 이를 시행한 의사 모두 기소되면 범법자가 된다(형법 269조, 270조). 예외적으로 근친상간이나 성폭행,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임신 중절을 허용한다(모자보건법 제14조).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불법 시술은 모자 보건법상 허용되는 합법적 시술보다 12배가량 비싸다. 여성들은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에 노출돼 있어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낙태죄를 협박 수단으로 이용하며 여성의 결정을 통제하려는 남성들도 있다. 낙태죄가 낙태한 여성과 의사만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을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자만 처벌받는 것일까?


인구 88%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는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국민 투표를 거쳐 2018년 5월 26일자로 ‘임신 중단’이 합법화됐다. 1983년 수정헌법 제8조에 따라 ‘임신부-태아의 생존권은 동등하다’며 임신 중단 금지를 헌법화한 지 35년 만이다.


미국에서는 낙태에 대한 찬반 여부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 폐지와 자연 유산 유도약 도입 및 합법화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이 게시되었다. 빠른 시간에 20만 명을 훌쩍 넘어선 청원에 대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실태 조사를 약속했고 후속 조치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2010년 이후 8년 만에 진행 중이다.


2012년 8월, 낙태죄에 대해 재판관 4: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법 재판소 역시 형법상 낙태죄 조항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 6년 만에 공개 변론을 재개했다. 당시 위헌 결정에 필요한 의견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나긴 했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던 결정이었다.


한편 한국천주교회는 ‘낙태죄 폐지 반대 백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한 100만 9577명의 서명지와 탄원서를 헌법 재판소에 제출했다. 탄원서의 핵심 내용은 “가장 약한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적 시스템으로서의 법률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나 건강권의 보장을 명분으로 가장 약한 생명의 생명권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단체는 낙태죄 폐지 강력 반대와 함께 남성 책임의 제도적 강화와 임산부모 지원제도 마련 등도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현실적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못했다.


법무부가 헌법 재판소에 제출했던 보충 의견서의 내용도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이 겪게 되는 신체 변화나 사회적 차별은 ‘낙태죄에 따른 별개의 간접 효과에 불과’ (이 부분이 워딩이 조금 이해하기 애매합니다. 낙태죄에 비하면 부수적인 문제 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하며 임신 중단을 하려는 여성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무책임한 여성(?)의 이미지로 묘사되어있다.


낙태죄 폐지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과 모성권, 여성의 자기 결정권 등 복잡한 가치들이 충돌하고 혼재하는 치열하고 어려운 논쟁거리이다.


낙태죄 폐지 측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1. 낙태 처벌 여부는 임신 중단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도 낙태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 임부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다.

2.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 행복 추구권, 건강권, 평등권,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권리 등 헌법상의 여러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3.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에 불과하다. 국가가 실효성 없는 법을 개정하지 않고 방임하면서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한편 낙태죄 유지 측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1. 모든 태아에게는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 태아의 생명 보호는 매우 중대한 공익이다.
2.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 임신 초기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모자 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대다수의 임부는 낙태 여부를 고민할 때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태어날 아이의 양육 환경, 사회, 경제적인 여건 등 모든 것을 고려하게 된다. 낙태죄 폐지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무분별한 낙태가 행해질 것이라는 인과 관계도 증명된 것이 없다. 모자 보건법 제14조의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 범위도 지나치게 좁다. 임신 초기(12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거나 사회적·경제적 적응 사유를 추가하는 등으로 변경이 필요하다.


낙태를 반대하는 거리 시위에서 한 푯말에는 ‘엄마, 나는 내 삶 살게요 엄마는 엄마 삶 살아요’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자마자 그 아이가 제 발로 걸어 나가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가? 아이를 낳는 것은 향후 적어도 20년간은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할 중대한 인생 지대사다. 과연 여기에 임부의 결정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지 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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