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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2-7 학교에서 배우는 ‘성폭력에 침묵하는 법’)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0-13 10: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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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2-7 학교에서 배우는 ‘성폭력에 침묵하는 법’


최근 ‘스쿨미투’ 페이스북 계정이 생겨 학교 안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의하면 학교 안 성폭력 사건이 지난 4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심의한 성폭력 사건만을 집계한 것으로 실제 집계가 안 된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교사가 벌점을 주는 징계 권한까지 갖고 있다. ‘찍히면 좋은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학생이 교사의 권력에 저항하기 힘든 곳이다.


학생들은 ‘남성-여성’, ‘교사-학생’ 등의 중첩적 위계 관계 속에서 일찌감치 성폭력에 ‘침묵하는 법’을 학습하게 된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어른들의 ‘방관’과 ‘질책’을 경험한 학생들은 체념 속에 그저 침묵하거나, 가해자를 알아서 피하는 우회로를 선택하게 된다. 학생의 도움 요청을 받은 젊은 교사가 주로 상급자인 가해 교사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노골적인 성폭력이 아닌 언어적 성희롱이나 가벼운 신체 접촉 등 ‘애매한’ 경우엔 개입이 더욱 어렵다.


학생이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뒤 학교에서 이 교사를 직위해제 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교사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단에 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한 법적 처벌에 이르려면 뚜렷한 입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10대 학생들의 진술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등 형사처벌이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문제가 된 교사들은 경징계에 그치고 교단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법적 책임을 면했다고 해서 교육자로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학생들 성희롱으로 해임된 교사가 교단으로 복귀한 사건에 대해(? 해임되었는데 다시 복귀되었다고 되어있어 혼란스럽습니다.) 학교가 교사를 해임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그럼 다시 재해임 된 것인지?) 판결 요지는 “검찰에서 ‘혐의 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기는 했으나 학생들이 수사기관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어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고,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만으로 교사의 비위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 초 안양예고 학생들은 교사 성희롱·성추행에 대한 제보 글을 모아 『여기』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해 SNS를 통해 교사들의 성희롱·성추행을 대거 폭로했음에도 무혐의 처분이나 경징계로 마무리되자 자신들의 피해를 결코 잊지 말고 재발을 방지하자며 낸 것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허위 사실 유포’라며 학내에 비치된 책을 모두 폐기해 버렸다.


이처럼 교실 안에서도 언어 성희롱 등은 워낙 일상적이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직 가치관이 온전히 정립되지 못한 10대 여학생들은 이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이다가 뒤늦게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이란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성폭력인지, 자신이 겪은 피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페미니즘 교육은 체계적인 인권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은 여전히 낙제점이다.


2015년 거센 비판을 받고 수정한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자료는 여전히 피해자 교육 위주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 4월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낸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을 한번 살펴보자.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학교 성교육 자료 보완 및 표준안 운용 실태조사 연구 용역’에서 “성폭력 예방에 대한 서술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낸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라면 가해 행위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함에도 폭력 피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방식의 서술을 유지하고 있다.


성폭력은 대체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 권력형 성폭력에서 거절의 기술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럼에도 “상대방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된다”며 거절의 기술을 강조한다. 시대착오·편향적 ‘성교육 표준안’이 아닐 수 없다.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기 전에 가해자의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 수업자료는 이성 간 의사소통의 차이를 말하면서 남성은 정서적인 공감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성차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는 절차를 가르칠 뿐, 자신이 겪은 피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데이트폭력에 대해서도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이나 스토킹, 농담, 외모에 대한 평가 등이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하지 않는다. 


2015년 당시 크게 논란이 됐던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학습 자료에는 ‘남성의 성적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나타난다’, ‘데이트 성폭력은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 발생할 수 있다’ 등 성역할과 성폭력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성폭력 예방법으로 ‘우유부단한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거나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등 피해자의 행동 지침만을 강조한 바 있다. 반대로 해석하면 피해자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거나 거절의 기술이 부족해 피해자가 된 것이라는 느낌마저 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10대를 벗어나 대학 진학을 한 경우는 어떨까?


조현각 미시간주립대 교수(사회복지학) 연구팀이 2016년 시행한 ‘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학생과 대학원생 1944명 가운데 ‘대학 생활 동안 성희롱을 한 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59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27.3%였다. 또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성폭력을 한 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59명(8.2%)이었다.


하지만 ‘피해 때문에 대학 내 프로그램·기관·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92%는 ‘없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42%·복수응답),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42%), ‘비밀 보장이 안 될까봐’(37%) 등을 이유로 들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큰 것이다. 신고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낙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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